나에게로
일본 생활 10년. 본문
대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넘어온 지 올해 10년.
지긋지긋한 입시 경쟁과 성적 경쟁에 치여 정신차리고 보니 취준생이 되어 있던 스스로에게
이대로 쉼 없이 달려가는 것이 맞냐는 작은 질문이 계기였다.
이대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한들 내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일본에 대한 어떤 동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이뤄내고자 하는 어떤 번듯한 계획이 있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저 나를 얽매이고 있던 어떤 족쇄들이 너무도 갑갑하게 느껴졌었고,
다른 이에게 짐을 지우게 되더라도 한 번쯤은, 그저 뒷일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을 원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 유학은 하나의 도피처였고 경제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해외 생활은 유일하다 여겼던 도피처를 낭떠러지로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후회는 없다.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나는 분명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내 마음을 지고 사는 게 힘겨워서 그렇게 좋아하던 기록들도 포기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는지 잊어버리고 지내왔었는데.
살아온 날 보다도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잃어버린 채로 지내는 건 너무 아까운 것 같아서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일본에 처음 온 날. 가구도 가전제품도 하나 없어 급한대로 창문에 신문지 붙여서 커텐 대용으로 쓰고, 또 급한대로 밥은 먹어야했어서 집 앞 편의점에서 얼레벌레 사온 도시락을 차디찬 바닥에서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구한 방은 유학원에서 소개시켜준 한인부동산을 통해 진행했었는데
부동산의 실수로 계약하고자한 집과는 전혀 다른 집이 계약되었다는 사실을 출국 직전에 알았다.
월세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방 넓이나 입지가 전혀 달랐기에 계획에 이런 저런 차질이 생겼지만 계약이 성립된 이후로 파기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룸메랑 둘이서 6조 1R에서 약 1년 정도 생활했었는데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떻게 부동산 직원이 계약물건을 착각하는 중대한 실수를 할 수 있지....?
당시에는 부동산 직원이 너무 가볍게 응대해서 그렇게 큰 일이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나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였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고,
이때의 기억이 강렬해서 그 뒤로 일본에서 방을 구할 때에는 한인부동산은 피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피해를 입은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국→일본, 일본 내 이사에 관해서는 이곳에서(외부링크) 따로 정리할 생각이다.)
먹고 살기 바빴던 암흑기는 사진도 찍어둔 것이 몇 없고
기억도 희미해서 다이어리에 적어둔 일정을 보며 간신히 기억해내는 수준이지만
이 공간에서, 과거의 나와 앞으로의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끝.